새로움의 끝없는 깊이
- Inni Kim
- 5일 전
- 2분 분량
내가 왜 알렉산더 테크닉을 시작했을까?
그 시작은 정말 단순했다.
내가 불편했으니까.
나아지고 싶었고,
나 스스로를 바로잡고 싶은 마음이 컸다.
삐끄덕거린다는 걸 처음 알아차린 건
열다섯 살 무렵이었다.
유난히 예민하고 섬세한 성향 덕분이었을까,
남들보다 조금 일찍 내 몸의 불균형을 감지했던 것 같다.
부모님은 내가 불편을 호소하자
여기저기 병원을 데리고 다니셨지만
차도는 없었다.
대학에 와서 부모님과 떨어져 지낸 뒤에도
내 관심사는 늘 내 몸이었다.
“왜 나는 이렇게 걸을까? 왜 어깨는 늘 아플까?”
그 물음을 안고 병원만 찾아다니기를 20년이 넘게 이어왔지만
정작 근원적인 해결은 없었다.
그때뿐, 조금 괜찮아졌다가도 다시 원래로 돌아가곤 했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내 몸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귀 기울이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그 시작은 소마틱스였다.
병원에 가면 여러 검사를 하지만,
결국 내가 얼마나 자세히 설명하느냐에 따라
진단이 달라지는 것을 보며 깨달았다.
“나를 제일 잘 아는 건 결국 나구나.”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나와 조금 더 친해지고,
내 몸과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갈 수 있을까?
그 질문이 커져가던 무렵,
나는 알렉산더 테크닉을 만났다.
알렉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까지도 회사 생활을 이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수업에 오신 분들이 종종 묻는다.
“회사 다니면서 어떻게 수업을 하세요?”
그럴 때마다 나는 대답한다.
“알렉을 하기 때문에 회사를 다닐 수 있어요.”
만약 알렉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병원을 전전하고,
좋다는 운동을 찾아다니며,
몸에서 보내는 신호를 그저 쫓아가기에
급급했을지 모른다.
정작 나를 보살피기보다는
‘나 아닌 것들’에 기대며 살아갔겠지.
하지만 알렉을 하면서 나는 조금씩 더 보였다.
내 몸이, 내 생각이, 내 마음이 가는 길이.
그 덕분에 일도 훨씬 편해졌다.
몸을 쓰는 방법뿐 아니라
생각의 폭과 효율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같은 곳을 가더라도 복잡하지 않은 길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처럼.
어제는 마이클 스태닝 선생님께 레슨을 받았다.
아, 이 가벼운 깊음은 뭐지?
수업 내내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그래, 내가 원했던 건 바로 이거였어.”
내 안에서 자꾸 되뇌었다.
선생님은 나를 이끌어가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깨워주셨다.
강요하지 않고, 내 안에 이미 있는 것들을
의식적으로 이끌어내는 방식.
내가 사랑했던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는 걸,
어제 다시 깨달았다.
알렉산더 테크닉은 선생님마다
정말 스타일이 다르다.
그건 바꿀 수 없는 진리다.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은 가르칠 수 없고,
몸으로 체화한 것만을 전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시간이 나는 대로 배우고,
연습하고, 그 과정을 즐긴다.
승마를 하는 것도, 요가를 하는 것도 그 연장선이다.
재활을 위해 늦은 나이에 시작했기에
젊은 친구들만큼 유연하지는 않지만,
알렉의 원리를 적용하면 그 또한 배움의 시간이 된다.
평생 배울 수 있고,
그 배움을 전할 기회가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겐 큰 축복이다.
이 감사함들을 이제는 함께 나누고 싶다.
나만 알고 있기엔 너무 소중한 것들이니까.
그 마음이 내 안에 들어오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조바심낼 필요는 없다.
때가 되면 문은 저절로 열리니까.
사실 이번 레슨도 못 받을 뻔했다.
세종에서 열리는 회의 일정이 갑자기 잡힌 게
하필이면 레슨이 있던 날이었다.
그런데 다행히 주최자 김유동 선생님께서 연락을 주셔서
어제 레슨에 갈 수 있었다.
이런 뜻밖의 행운이라니!
게다가 로빈 시몬 선생님이 강력히 추천해주신
이메일도 큰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마이클 선생님과의 귀한 시간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오늘은 고마움이 마음에 가득하다.
로빈 선생님께도 감사의 메일을 꼭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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